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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国のアフタヌーンティー

애프터눈 티의 시작

영국 하면 홍차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오후의 홍차'라는 음료나 '애프터눈 티'라는 카페 체인 등이 있어 친숙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의 홍차 문화를 이끄는 영국에서 홍차는 생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습관입니다.

애프터눈 티 습관이 시작된 것은 1840년경입니다.
제7대 베드퍼드 공작 프랜시스 러셀의 부인인 '안나 마리아 러셀'이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산토리의 '오후의 홍차' 라벨에 그려진 여성 일러스트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오일 램프가 보급되면서 그에 따라 연극 관람 등 사교 활동을 마친 후 늦은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점심을 먹는 습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녁 식사 전까지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홍차나 구운 과자 등을 간식으로 먹게 된 것이 계기라고 합니다.

안나 마리아의 저택인 '워번 애비'에는 항상 많은 손님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공작이 남성 게스트들과 사냥을 즐기는 동안, 안나 마리아가 여성 게스트들을 응접실로 초대해 오후 5시경에 차와 과자를 대접하는 다과회를 열었던 것이 손님들에게 평판이 좋았습니다.
안나 마리아 자신이 당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있었고 빅토리아 여왕에게도 사랑받는 존재였기 때문에, 이 습관은 상류층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워번 애비'에는 지금도 애프터눈 티의 성지로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애프터눈 티의 역사

영국에 홍차가 들어온 것은 비교적 늦은 1650년경입니다.

처음에는 고급품으로 왕실 등 일부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자 동인도 회사가 본격적으로 영국에 홍차를 수출하게 되면서, 점차 다른 상류층이나 중산층의 생활 속으로도 스며들었습니다.

처음 안나 마리아가 시작했을 무렵의 애프터눈 티는 저택에 머무는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기에 실내복 차림으로 편안하게 즐겼던 것 같지만, 점차 외부 방문객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더욱 폭넓은 사교의 장이 되어 갔습니다.
본격적인 사교장이 됨에 따라 복장이나 예절도 엄격해지고 가구 등도 정비되었던 것 같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층이나 중산층 가정에는 '가정 초대회'라는 사교 규칙이 있어, 1주일에 1~2회 정도 각 가정에서 요일을 정해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날로 정해두어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그곳에 약속 없이 방문한 손님이 15~20분 정도 머물며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그런 장소로서 애프터눈 티가 확산되었습니다.

애프터눈 티는 손님의 수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뷔페 스타일로 준비됩니다.
음식은 샌드위치나 스콘, 케이크 등이 기본이었으며 장소는 '드로잉 룸'이라 불리는 응접실이었습니다.
이곳에 놓인 낮은 로 테이블에서 차와 음식을 대접했기 때문에 애프터눈 티를 '로 티(Low Tea)'라고도 부릅니다.

애프터눈 티와 비슷한 습관으로 '하이 티(High Tea)'라고 불리는 것도 있는데, 이는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육류나 생선 등 본격적인 식사를 곁들이는 것입니다.
식사용 높은 테이블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이 티라고 부릅니다.
본래는 애프터눈 티와는 별개의 노동자 계급 습관이었던 것이 홍차 문화가 미국 등지로 퍼져 나갈 때 합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애프터눈 티는 일반인에게도 널리 보급된 습관이 되었으며, 예절을 지나치게 따지지 않고도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리

영국 앤티크 중에는 애프터눈 티와 관련된 물건이 많습니다.
홍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티포트나 찻잔, 티스푼은 물론, 찻잎을 담는 티 캐디나 비스킷을 담아두는 비스킷 워머 등 영국 앤티크의 중심이 되는 왕도와 같은 카테고리입니다.
현재의 생활에도 접목하기 쉬운 물건이 많으니 꼭 한번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